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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것은 침묵 뿐,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존재했던 시간의 증거를 찾아서

by woos11-1020 2025. 12. 14.

뉴칼레도니아뜸부기(Gallirallus lafresnayanus)는 과거 존재했으나, 지금은 그 소리조차 남지 않은 새다. 이 조류는 19세기 중반 단 한 점의 박제 표본으로 처음 확인된 이후, 다시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로도 과학계는 수차례 탐사와 조사를 통해 이 새의 흔적을 찾고자 했지만, 명확한 결과는 얻지 못했다. 이름만 남긴 채 침묵 속으로 사라진 이 조류의 존재는 이제 단순한 멸종의 이야기를 넘어선다. 이는 인간이 생명의 흔적을 어떻게 기록하고, 어떻게 잊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존재했던 시간’에 남겨진 단서들을 추적하고, 그것이 생물학과 생태학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고찰해본다. 단 한 번의 기록으로 인류의 기억 속에 자리한 이 새의 존재를 우리는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남겨진 것은 침묵 뿐,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존재했던 시간의 증거를 찾아서

박제 표본 하나로 기록된 생명의 흔적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 대해 과학계가 공식적으로 확보한 자료는 단 하나의 박제다. 이 표본은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1860년대 뉴칼레도니아섬에서 채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확한 채집 위치, 채집자, 생태 정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박제를 통해 외형은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새가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무슨 소리를 냈는지, 어떤 습성을 지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생물의 존재는 단지 형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생명이 지나간 자취, 먹이 활동, 번식 행위, 그리고 소리까지 포함되어야 비로소 ‘살아 있었던 생물’로 기록될 수 있다. 하지만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게 그런 증거는 허락되지 않았다. 남겨진 것은 박제 하나뿐. 과학은 이 제한된 단서를 기반으로 종의 정의를 내렸지만, 생명의 전모를 이해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 새의 존재는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머물러 있다.

원주민의 기억과 사라진 울음소리

흥미로운 점은, 뉴칼레도니아의 일부 원주민 공동체에서는 이와 유사한 조류에 대한 기억을 구술로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밤에 울던 낯선 새”를 기억하며, 이 새가 과거 자신들의 마을 근처 숲에서 서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계는 이러한 기억을 공식적 자료로 인정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며 원주민들조차 그 존재를 잊어가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는 지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으며, 그 새가 어떤 방식으로 주변 환경과 교류했는지는 완전히 미지로 남았다. 조류의 울음소리는 종마다 고유하고, 생태적 행동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울음은 단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고, 음향자료는커녕 묘사조차 남아 있지 않다. 결국 이 조류는 소리를 내던 생명체였음에도, 그 목소리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처럼 살아 있었던 증거조차 남기지 못한 생물의 존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어야 하는가?

탐사의 실패와 잊힌 시간의 공백

지금까지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찾기 위한 탐사는 여러 차례 이루어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탐사대는 섬 남부의 밀림, 습지, 고지대 등 다양한 서식 가능 지역을 조사했지만, 울음소리나 깃털, 둥지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이 조류가 이미 20세기 이전에 멸종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탐사들이 대부분 짧은 기간, 제한된 구역에서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뉴칼레도니아는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 많고, 탐사 기술 또한 제한적이었기에 이 조류가 여전히 존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또한, 당시 기록 부족과 생태 정보 부재는 이 탐사의 정밀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탐사대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곧 이 조류가 없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이 실패는 우리가 아직도 뉴칼레도니아뜸부기가 살아 있었던 시간을 제대로 추적해보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복원되는 생명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단순한 사실 수집이 아니라, 상상력을 동반한 재구성이 필요하다. 생물학은 남겨진 단서를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그 생명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를 복원하려 한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처럼 증거가 부족한 경우, 과거의 생물학적 조건이나 유사 종과의 비교를 통해 행동을 추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동일 속(Gallirallus)의 다른 비행불능 조류들이 밤에 활동하거나 습지에서 번식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 새 역시 유사한 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상상력은 때로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지나친 단순화나 오해를 낳기도 한다. 실존한 생물의 삶은 수백만 년의 진화와 복잡한 생태 맥락 속에 놓여 있었으며, 단순한 ‘비슷한 종’의 특성으로 환원할 수 없다. 우리가 과연 진짜로 이 조류를 이해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잊힌 생명을 과학적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는가. 그 물음이 중요하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단지 박제된 형체로 박물관에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 침묵은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그 침묵은 과학과 기억, 생명의 흔적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지나쳤고, 또 얼마나 많은 생명을 기억하지 못한 채 잊어왔는가.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존재했던 시간’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얼마나 제한된 시야로 생명을 바라보는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남겨진 것은 침묵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침묵을 외면하지 않고 들으려는 노력이, 인간과 생물 사이에 있었던 연결을 다시 찾는 시작일 수 있다. 존재했던 생명의 자취를 따라가는 일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우는 행동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