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목포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항해사로 승선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바다는 광활했고 무섭기도 했고,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섬과 항구들은 정말 지도에서나 보는 너무도 어색한 이름에서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두렵기만 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나는 각 나라를 입항할 때 그 나라의 특색과 특이한 점을 찾아보자고 다짐했고 여러 곳이 있었지만 특히 인상 깊었던 곳 중 하나는 남태평양의 조용한 섬, 뉴칼레도니아였다. 그곳에 정박했던 어느 날, 나는 항구 근처 카페에 들렀고, 그 안에 비치된 잡지를 통해 '뉴칼레도니아뜸부기'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낯선 이름은 그 당시에는 그저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어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작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 그리고 예상치 못한 만남
뉴칼레도니아에 도착한 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2003년 초였다. 상선의 항로에 따라 여러 국가를 거치며 남태평양을 지나던 중, 짧은 정박 일정으로 누메아 항에 입항했다. 항상 느꼈지만 새로운 나라는 무언가 기대하면서 잠시 상륙을 하게되는데 선배 항해사와 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잠시 한숨 돌렸다. 그곳에서 우연히 눈에 띈 잡지 한 권. 표지에는 잘 모르는 프랑스어와 함께 어떤 새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던 중 이상한 새 이름과 함께 “지금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류”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짧은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이런 새가 있었던가? 그리고 왜 아무도 모를까?' 그것이 뉴칼레도니아뜸부기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새에 대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잡지 속 설명은 길지 않았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19세기 중반 단 한 마리의 표본만이 수집되어 박제로 남아 있으며, 그 이후 생존 여부에 대한 명확한 보고는 없다고 했다. 생김새는 일반적인 뜸부기와 비슷하되, 약간 더 둥글고 다부진 체형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나는 항해사로서 여러 나라의 자연과 동물을 접해왔지만, 그렇게 단 한 마리만 남아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내가 지금 걷고 있는 바로 이 섬 어딘가에, 언젠가는 그 새가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묘한 감정이 들었다. 잡지는 이 조류가 멸종한 것 같지만,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채 살아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 그 새가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섬이 조금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떠오른 이름
시간은 흘렀고, 나는 더 많은 항해를 하며 수많은 나라를 다녔다. 다른 나라는 여러번 입항해서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유독 뉴칼레도니아는 딱 한 번 입항해서 내 머릿속에서 천천히 흐려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잡지 속 새의 이름은 종종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터넷 검색이 훨씬 편리해진 요즘, 나는 어느 날 문득 그 새를 다시 검색해 보게 되었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여전히 멸종된 조류로 분류되어 있었고, 관련 정보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몇몇 과학 블로그와 자연사 관련 글에서 이 새를 언급하며 ‘단일 표본’, ‘미확인 멸종’, ‘기록의 부족’이라는 키워드가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우연히 만났던 그 호기심은, 사실 기록되지 않은 생명을 향한 조용한 관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는 이 생물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단 한 번의 기억이 만든 연결
내가 그 새를 직접 본 적은 없다. 아마 살아 있는 누구도 그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름을 우연히 접했던 경험은, 내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바꿔놓았다. 멸종이라는 단어는 그저 백과사전 속 한 줄이 아니라, 실제로 한 종의 생명이 우리의 시선과 기록 밖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만약 그때 그 잡지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뉴칼레도니아라는 섬을 ‘그저 또 하나의 입항지’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 섬은 한 생명의 마지막 흔적이었고, 나에게는 그 흔적을 ‘기억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비록 우연이었지만, 그 우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나는 항해사로서 수많은 섬과 도시를 지나왔다. 그 중 대부분은 사진 한 장 없이 잊혀졌고, 이름조차 희미하다. 하지만 뉴칼레도니아는 조금 다르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뉴칼레도니아뜸부기’라는 이름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세상은 수많은 생명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중 일부는 단지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존재들을 위해, 아주 작은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그날, 잡지 속의 그 조류가 나에게 전해준 느낌을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나에게 하나의 새가 아니라, 사라지는 생명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잊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