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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표본으로 정의된 생물인 뉴칼레도니아뜸부기, 과학은 충분했을까?

by woos11-1020 2025. 12. 21.

과학은 증거 위에 세워진 학문이다. 그러나 그 증거가 단 하나뿐이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확신할 수 있을까? 뉴칼레도니아뜸부기(Gallirallus lafresnayanus)는 단일 표본만으로 정의된 조류로, 과학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례다. 이 새는 19세기 중반 단 한 점의 박제 표본을 통해 학계에 보고된 이후, 추가적인 관찰 기록도, 생태 정보도 남기지 못한 채 멸종된 종으로 분류되었다. 학명은 존재하지만, 살아 있는 모습은 누구도 본 적이 없다. 과연 우리는 이 조류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과학은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너무 많은 결론을 내려버린 것은 아닐까? 이 글은 단일 표본으로 정의된 생물

단일 표본으로 정의된 생물인 뉴칼레도니아뜸부기, 과학은 충분했을까?

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바라본 과학의 판단이 충분했는지를 되묻는다.

 

 

단 하나의 박제, 종을 정의하기에 충분했을까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존재는 단 한 점의 박제 표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 표본은 외형적 특징을 근거로 새로운 종으로 분류되었고, 이후 학술 문헌에 정식으로 등재되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요소들이 거의 고려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종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형태뿐 아니라 행동, 번식 방식, 서식 환경, 개체 간 변이 등이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조류에 대해서는 그러한 정보가 전무하다. 과학은 외형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Gallirallus 속에 포함시켰지만, 이것은 비교 가능한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내려진 잠정적 판단에 가깝다. 단일 표본은 그 자체로 예외적 개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병리적 변형이나 미성숙 개체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이 표본을 하나의 종으로 확정했다. 이 판단은 당시 기준에서는 합리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매우 불안정한 토대 위에 놓여 있다.

DNA 없는 종 분류, 과학적 검증의 공백

현대 생물학에서 DNA 분석은 종 분류의 핵심 도구다. 유전 정보는 외형보다 훨씬 정밀하게 종의 계통과 관계를 밝혀준다. 그러나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이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표본의 보존 상태와 수집 시기의 한계로 인해 유전자 추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조류는 유전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채 분류 체계 안에 머물러 있다. 이는 과학적 검증이 완결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이 종의 위치가 언제든 수정될 수 있음을 뜻한다. 만약 유전 정보가 확보된다면, 현재의 분류 자체가 뒤집힐 가능성도 존재한다. 과학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조류를 ‘확정된 멸종종’으로 취급한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긴다. 검증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과학은 어디까지 단정할 수 있는가?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과학이 스스로 설정한 검증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한 채 분류된 드문 사례다.

관찰 없는 생물, 생태는 어떻게 상상되었는가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생태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추정’이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이 조류가 비행 능력이 약했을 것이라는 가설, 습지나 숲 바닥에서 생활했을 것이라는 추정, 야행성이었을 가능성 등은 모두 유사 종의 행동을 기반으로 한 간접적 해석이다. 실제 관찰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 모든 설명은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일 뿐이다. 과학은 종종 이런 방식으로 공백을 메운다. 문제는 이러한 추정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독자와 연구자 모두가 이 조류의 생태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생태는 관찰의 산물이지 상상의 결과물이 아니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경우, 우리는 생태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생태를 구성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은 설명의 편의를 위해 침묵을 이야기로 바꿔버렸을지도 모른다.

과학의 역할은 확정인가, 보류인가

단일 표본으로 정의된 생물 앞에서 과학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과학의 역할일까, 아니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더 책임 있는 선택일까.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이 질문을 우리 앞에 놓는다. 과학은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결론을 내려야 하는 학문이지만, 동시에 그 결론이 잠정적임을 분명히 밝혀야 할 책임도 있다. 그러나 이 조류는 ‘멸종’이라는 단어로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그 이후의 의문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단일 표본이라는 한계, 검증 불가능한 생태, 유전 정보의 부재는 충분히 문제 제기가 가능한 요소였지만, 과학은 그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어쩌면 과학은 설명할 수 없는 존재를 견디는 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단일 표본으로 정의된 생물이 어떤 질문을 남기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조류의 이름을 알고, 분류를 알고, 멸종 여부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아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과학은 이 생물을 정의했지만,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에는 증거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사례는 과학의 실패라기보다, 과학이 가진 한계를 인정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모든 생명이 완벽하게 기록될 수는 없으며, 모든 존재가 명확한 데이터로 환원될 수도 없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그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과학이 정말로 충분했는지를 묻는 이 질문은, 결국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확정이 아닌 겸허함, 결론이 아닌 열린 기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