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단 하나의 표본, 과학은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by woos11-1020 2025. 12. 13.

조류학은 시시각각 진화하고 있지만, 때로는 단 하나의 단서만으로 전체 퍼즐을 완성하려는 고된 과정을 겪는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Gallirallus lafresnayanus)는 그러한 과학적 한계를 가장 선명히 드러내는 사례다. 19세기 중반, 단 한 점의 박제 표본으로 존재가 기록된 이 조류는 지금까지 야생에서 다시 관찰되지 않았으며, 추가적인 표본도 확보되지 않았다. 이처럼 관찰 기록과 행동 정보 없이 오직 ‘박제 하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연구는 과학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는 정식 종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조류학과 생물학에서 중요한 멸종종 중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 조류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단일 표본 기반 연구가 가지는 과학적 한계와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 대해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들을 분해해서 살펴본다.

 

단 하나의 표본, 과학은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표본의 한계: 보존된 형체는 있지만, 생태는 없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 대한 모든 과학적 정보는 오직 하나의 박제 표본에 기반하고 있다. 이 표본은 프랑스의 한 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겉모습은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제한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해당 표본이 채집된 정확한 시기, 위치, 서식 환경에 대한 기록이 매우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어디서 잡혔다’는 지리적 정보 이상의 문제로, 생태적 특성—예를 들어 주 활동 시간, 주요 먹이, 번식 시기 등—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남아있지 않다는 의미다. 박제만으로는 생물의 행동을 유추할 수 없으며, 특히 비행 능력이나 울음소리, 사회적 행동 등은 박제 표본으로는 절대 재현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이런 생김새였다’는 시각적 단서 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극도로 정보가 결핍된 생물인 셈이다.

DNA의 부재: 과학적 증명조차 어려운 종

오늘날 생물학은 DNA 분석을 통해 종의 계통, 진화적 위치, 유전적 다양성까지 파악할 수 있는 시대에 도달했다. 그러나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는 이마저도 적용하기 어렵다. 해당 표본은 19세기 수집품으로, 방부 처리 과정에서 DNA가 대부분 파괴되었거나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 DNA 추출 시도가 있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이 새의 유전적 계통 역시 추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현재는 Gallirallus 속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유전적 증거 없이 외형적 유사성만으로 판단된 것이다. 만약 DNA가 확보된다면, 현재의 분류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존재한다. 즉, 이 조류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생물이라기보다, 역사적 기록과 제한된 형태 정보에 기반한 ‘가설적 존재’에 가깝다. 이는 우리가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안다고 말하기에 매우 불완전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기억 속 생물: 기록되지 않은 생명의 침묵

흥미롭게도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 대한 존재는 과학적 기록보다도 원주민들의 구술 전승에서 더 자주 언급되곤 했다. 일부 지역 주민들은 과거 이와 유사한 조류를 보았다고 증언했고, ‘밤에 움직이는 땅새’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술 기록은 공식 학술자료로 인정받지 못해 과학적 연구에서는 배제되었다. 그 결과,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과학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생태계나 인간의 기억 속에서는 점점 더 잊혀져 갔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이 조류의 정확한 서식 위치나 행동 특성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생물의 존재가 오직 한 점의 표본으로만 남는다는 것은, 그것이 과연 실재했던 생물인지조차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그래서 더더욱 모순적인 존재다. 학문적 정의는 있지만, 그 생명은 실체보다 관념에 가깝다.

과학의 책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생물을 믿는 일

단 하나의 표본에 기반한 생물학적 정의는 과연 정당한가? 이 질문은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통해 과학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물음이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표본 하나에 너무 많은 상상을 덧붙이고, 존재하지 않는 생태를 창조해낸다. 이는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과학적 경계의 무너짐을 의미할 수 있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지금도 ‘멸종된 조류’로 분류되어 있으며, 그 이름은 각종 문헌에 등장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는 그 생물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과학은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최선의 추론을 해야 한다는 운명을 지녔지만, 그것이 곧 진실이라는 착각에 빠질 때, 학문은 자기 검열을 잃는다. 우리가 이 새를 정의할 때, 그 정의는 절대적 사실이 아니라, 제한된 정보에 기반한 잠정적 결론임을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과학이 스스로를 신뢰받게 만드는 첫걸음이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우리가 얼마나 적은 정보를 가지고 한 생물을 ‘안다고’ 착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단 한 점의 표본, 그것도 불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박제 하나만으로 우리는 한 생물의 존재를 정의했고, 멸종 여부까지 단정했다. 그러나 DNA 분석도 불가능하고, 생태 관찰도 전무하며, 기록된 울음소리조차 없는 이 새는 사실상 과학적으로 ‘알 수 없는 생물’에 가깝다. 이 조류는 과학이 갖는 인식의 한계와 불완전성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과학은 객관성과 증거를 기반으로 움직이지만, 때로는 그 객관이 놀라울 정도로 추측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둘러싼 수많은 물음은 어쩌면 미래의 과학이 채워야 할 과제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짜로 이 새를 이해하려면, ‘기록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겸허한 태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