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사로서의 승선 생활을 마친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은 땅 위에서의 삶이 익숙해졌지만, 가끔씩은 바다를 떠돌던 시절의 추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자주 생각나는 건, 2003년경 뉴칼레도니아에서 정박했을 때 우연히 잡지에서 본 ‘뉴칼레도니아뜸부기’라는 이름이다. 단 하나의 표본만 남기고 사라진 멸종 조류. 당시엔 그저 짧은 호기심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새는 내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고, 문득 궁금함이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서울도 아니고 인터넷도 아닌, 직장 근처인 수원시립중앙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 이름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책장 사이에서 다시 찾는 이름
도서관은 늘 조용하면서도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수원시립중앙도서관의 자연과학 코너는 생각보다 꽤 넓었다. 나는 도서관 검색대를 통해 ‘뉴칼레도니아’, ‘멸종 조류’, ‘뜨물기’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주제라 정보가 없나 싶었지만,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남태평양 생물’, ‘멸종 생물 백과’, ‘희귀 조류’ 등으로 탐색하니, 조류학 관련 서적 몇 권이 눈에 들어왔다.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한 권의 도감에는 뉴칼레도니아섬에 서식했던 조류 목록이 간략히 실려 있었고, 그중에 ‘Gallirallus lafresnayanus’라는 학명이 아주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름 하나를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두 시간. 그러나 그 짧은 줄 하나를 읽었을 때의 묘한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마치 먼 기억의 실루엣이 실제로 다시 나타난 기분이었다.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생명
도감 속의 설명은 짧았지만, 그 안엔 많은 걸 담고 있었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실제로 살아 있는 모습이 단 한 번도 기록된 적이 없는 조류다. 박제 하나로 존재가 확인되었고, 그 외의 생태나 울음소리, 습성은 모두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내가 도서관에서 확인한 자료들 역시 대부분 2차 출처였으며, 원본 논문이나 탐사기록은 외국 학술지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조차도 대부분 “기록 없음”, “확인 불가”, “추정됨”이라는 표현으로 가득했다.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은 듯한 생명. 나는 그 순간, 왜 이 새가 내게 계속 잊히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단지 멸종이라는 안타까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끝까지 지켜보지 않았던 생명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기억의 복원, 기록의 의미
우리는 종종 유명한 동물, 상징적인 멸종 생물은 기억하지만,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존재들은 너무 쉽게 잊는다. 도서관에서 나는 한 가지를 더 느꼈다. 바로 '기록'의 힘이다. 종이 위에 작은 글씨로라도 적혀 있기에, 나는 이 새의 존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다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그 도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면, 내 기억 속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그냥 막연한 환상처럼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정보는 단순히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다. 내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결국은 또 하나의 기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마지막 흔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지워지지 않는 이름, 나만의 생물학적 추억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항해사였고, 지금은 평범한 일상인이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가 기록하지 않았던, 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어떤 생명체에 대해 아주 조용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수원시립중앙도서관에서의 그 짧은 조사와 확인은, 내게 또 다른 형태의 항해와도 같았다. 바다를 떠돌며 물리적인 공간을 지나갔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기억과 기록을 항해하며 시간이라는 바다를 건넜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라는 이름은 지금도 살아 있는 생물은 아니지만, 내 안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다. 나는 그 새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그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이 이야기는 또 한 번 생명을 확장하는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사람은 잊혀지는 것이 두렵고, 생명은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특별한 상징이 되었다. 우연히 항해 중 만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도서관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서 다시 마주했다. 나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이 경험을 통해, 기록의 중요성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이제 나는 단순히 정보를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기억되지 않은 생명은 너무 쉽게 사라진다. 나는 그 사라짐 앞에서, 아주 작은 이름 하나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그것이 뉴칼레도니아뜸부기였고, 지금 이 글이 그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