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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거리

by 우스111111 2026. 1. 23.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가 그 대상을 ‘알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여러 자료를 읽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익숙함이 생기고, 그 익숙함은 곧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지기 쉽다. 나 역시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 대해 글을 여러 편 쓰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따라왔다.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반복된 정보에 익숙해졌을 뿐일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출발해, 내가 왜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려 했는지를 정리한 기록이다.

1. 반복된 정보가 만들어내는 익숙함의 함정

같은 정보를 여러 번 접하면, 그 내용은 점점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설명이 짧아도 이해한 것처럼 느껴지고, 추가 설명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문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뉴칼레도니아뜸부기와 관련된 자료를 정리하면서 나는, 이 익숙함이 실제 이해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자주 체감했다. 대부분의 정보가 같은 출처와 같은 문장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같은 정보를 여러 번 확인했을 뿐이라는 인식이 점점 분명해졌다.

2. 거리를 두지 않으면 단정이 시작된다

대상과 너무 가까워지면, 설명은 쉽게 단정으로 바뀐다. 특히 기록이 부족한 대상일수록 그 위험은 커진다. “아마 이랬을 것이다”, “이런 성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표현은 자연스럽게 글 속에 스며들기 쉽다. 나는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다루며, 이런 표현을 쓰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발 물러서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계속 구분하지 않으면, 글은 사실을 정리하는 기록이 아니라 해석을 덧붙인 이야기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거리두기는 무관심이 아니라 책임이다

거리를 둔다고 해서 대상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충분히 알 수 없는 대상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나는 이 블로그에서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다루며, 생태를 설명하기보다는 기록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 선택은 글을 덜 흥미롭게 만들 수도 있지만, 대상을 오해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라고 생각했다.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는 의식적인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확인할 수 있는 범위와 그렇지 않은 범위를 분리하는 태도가 기록을 지켜준다. 이 글은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디까지 말할 수 있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스스로 점검한 기록에 가깝다. 앞으로도 이 블로그에서는 익숙함이 단정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