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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이 없이 사라진 뉴칼레도니아뜸부기, 누가 마지막으로 그 새를 봤을까?

by woos11-1020 2025. 12. 26.

모든 멸종에는 마지막이 있다. 그러나 모든 마지막이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Gallirallus lafresnayanus)는 그중에서도 유독 조용히, 그리고 쓸쓸하게 사라진 종이다. 누구도 그 새의 마지막 날을 보지 못했고, 누구도 그 사라짐을 목격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심지어 생존했을 때조차, 그 새를 특별히 주목하거나 연구한 사람도 없었다. 멸종이라는 단어는 그저 생물학적 상태를 설명할 뿐이지만, 이 조류의 사라짐은 ‘관심 없는 세계’가 만든 침묵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이 글은 “도대체 누가 마지막으로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봤을까?”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그 존재의 퇴장을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는 과학적, 생태적, 철학적 의미를 되짚어보려 한다.

 

찾는 이 없이 사라진 뉴칼레도니아뜸부기, 누가 마지막으로 그 새를 봤을까?

관찰자 없는 멸종, 과학은 어디에 있었을까

대부분의 멸종 종들은 생태학적 기록을 남긴다. 마지막 관찰일자, 생존 추정 시기, 또는 개체 수 감소 추이가 데이터로 남겨진다. 그러나 뉴칼레도니아뜸부기에는 그런 흔적조차 없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박제 표본 하나 외에는, 이 조류를 실제로 목격했다는 관찰 기록이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그 새를 ‘멸종했다’고 말하지만, 그 멸종이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추정할 수 없다. 학자들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그 사이에도 이 새를 찾으려 한 시도는 거의 없었다. 이는 단순한 탐사의 실패가 아니라, 애초에 '관심의 부재'라는 문제에 가깝다. 과학이 주목하지 않았고,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생물은 그렇게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 조류는 '누가 마지막으로 봤을까'가 아니라, '처음부터 누가 제대로 본 적이 있었을까'를 묻게 만든다.

원주민의 기억 속 흔적, 그러나 증거는 없다

뉴칼레도니아 원주민 일부는 오래전까지 “밤에 울던 숲속의 새”를 기억한다고 말해왔다. 이 증언은 생물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할 수 있는 단서지만, 구체적인 묘사나 시기, 개체 수 등의 정보가 부족해 과학적 증거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술 전승은 때로 공식 기록보다 더 생생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만약 그들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누군가는 20세기 중반까지도 뉴칼레도니아뜸부기를 실제로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기억은 기록으로 전환되지 않았고, 그렇게 세월과 함께 흐려졌다. 과학은 때때로 비가시적인 증언을 외면하고, 오직 측정 가능한 수치만을 신뢰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생물학적 맥락이 누락되기도 한다. 마지막을 본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기억은 공식 과학사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멸종을 목격하지 못한 사회, 책임은 없는가

우리는 보통 멸종을 자연의 결과로 생각하지만, 그 속엔 인간 사회의 구조적 무관심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가 사라졌을 당시, 서식지 보호에 대한 정책도, 멸종 위기 조류에 대한 제도적 대응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조류는 학계 내부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일반 대중은 그 이름조차 몰랐다. 사회 전체가 이 새의 존재를 놓쳤고, 사라지는 과정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멸종된 생물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뒤늦은 관심’이기 때문이다. ‘누가 마지막으로 봤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과거를 향한 물음이 아니라, 미래의 멸종 위기 생물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현재적 물음이기도 하다. 사회는 존재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

기록되지 않은 마지막이 남긴 공백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마지막 순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종이 역사에서 어떻게 취급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라진 순간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존재 자체가 '비가시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뜸부기 한 종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멸종종이 같은 방식으로, 조용히, 그리고 아무런 기억 없이 사라진다. 기록되지 않은 마지막은 곧 역사에서의 부재를 의미한다. 존재는 했지만, 기억되지 않는 존재. 과학은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표본’이라는 물리적 증거를 활용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라짐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인간의 기록은 숫자와 문서로 남지만, 생명의 마지막은 그보다 더 섬세한 관찰과 관심으로만 남을 수 있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의 마지막을 본 이가 누구였는지 우리는 끝내 모른 채로 남지만, 그 부재는 오늘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마지막으로 그 새를 봤을까?”라는 질문은 단지 과거에 대한 회고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생명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단 하나의 표본만 남긴 채, 아무도 목격하지 못한 멸종을 맞았다. 그 사라짐은 과학의 공백이며, 동시에 인간 사회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누군가는 그 새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은 기록되지 않았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살아 있는 생물들을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 마지막을 보지 못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존재의 흔적을 남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뉴칼레도니아뜸부기는 우리에게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용히 일깨워주는 존재다.